본문 바로가기
이슈!

글 잘쓰는 배우 유아인, 시를 통해 바라본 필력

by 로담한의원 2015. 8. 20.

글 잘쓰는 배우 유아인, 시를 통해 바라본 필력

 

 

 

 

 

 

최근 류승완감독의 영화 베테랑을 통해

악역연기에 도전한 배우 유아인!

 

워낙에 개성이 강하고, 자기세계가 강한 배우로 유명한 그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사회에 대해 가감없이 본인의 생각을 내뱉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매력있는 배우 유아인!

그 안에 숨겨진 본인만의 세계!

그가 썼던 글들을 통해서 한번 훔쳐볼까요?

 

 

 

 

 

 

 

 

나는
 


나는 알고있었어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집에 오는 길에 양화대교 남단에 쭈그려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워댔어
강 건너로 보이는 굴뚝을 집어 삼킨것 같았지 뻐끔.뻐끔. 푸후. 뻐끔.뻐끔. 푸후.
모락모락 뿜었던 연기가 하늘을 가리더니 서울을 다 덮어버렸어
내가 다 타야 이 밤이 끝나겠지 세모금만 더 빨게 해줘
그러다 끝인지도 모르고 허연 재로 남아 무안하게 아침을 맞거든, 비라도 좀 내렸으면
하늘을 좀 씻어내고 나를 휩쓸어 강물에라도 떠내려가게
어쨌든 아침은 오더라구 너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구걸하던 너의 손에 시뻘건 매니큐어가 발려 있었어
수줍게 넌 지껄였지 이건 정말 사랑인가봐
지랄하지 말아요 나는 또 그건 진짜 사랑인가봐
벌어진 앞니 사이로 날숨을 좀 뱉어내며 동공을 벌렁이더니
뻔뻔하게 넌 지껄였지 이건 그냥 장난이라고
장난치지 말아요 나는 또 이건 진짜 장난이니까
 나는 알고있었어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두달된 친구인 서른의 그녀는
 
 
두달된 친구인 서른의 그녀는
서른 하나가 되어 오늘도 내 집을 찾았다.
남들 다 걸리는 감기에 걸려 함께 병원엘 가기로했다.
나는 막 글을 쓰던 참이었다.
문득 그녀에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녀는 내 침대에 누워 엊그제 받아온 시나리오를 읽고 있고.
나는 30분여 만에 글을 마쳤다.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그녀가 소중한 것은 나를 내 속에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함께라는 의미는 하나라는 의미와 다르다.
그것이야 말로 외롭지 않은 관계다.
날이 저물고,
내가 되었든 그녀가 되었든
서로를 떠나 혼자서 새벽을 맞이 하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몇 안되는 내 모든 친구들이 그러하리라..
하나였던 내 연인의 빈자리를 고통으로 실감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모순과 고통의 계절
 
 
"쌀쌀해."
 라는 말을 생각 보다 더 일찍 꺼내 입었다. 시커먼 팔꿈치가 훤히 드러나는 반팔 티셔츠 위로.
집에 오자마자 드레스룸에 들어가 널부러진 빨래더미를 대충 수습하고 옷장 문을 죄다 열어젖힌다.

매년 하는 생각. '지난 해 열성으로 사모았던 옷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올 봄에 입었던 가디건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일때 사두었던 자켓을 걸쳐본다.
 
 밤이면 제법 쓸쓸한 바람이 불고 이 여름,

에어콘 아래에서 다 쏟아내지 못 한 땀방울이 무안하리 만큼 가을은. 엉겁결에 덮쳐올 것이다.
 
 3,4,5월은 봄. 6,7,8월은 여름. 9,10,11월은 가을. 나머지는 겨울. 어릴때 나는 그런줄로 알았다.

반팔은 여름. 긴팔은 겨울. 그 두가지가 모두 활보하는 날은 봄이나 가을. 그렇게도 알았다.

그렇게 모든게 정해져 있는줄로 알았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누군가 그 초록색 창가에 앉아 "이제 제법 가을 냄새가 나네."라고 했고,

그 후로 나는 세개의 가을을 더 그 처량맞은 목소리로 맞이했다.
 9월. 가을이다. 반팔들. 아직이다. "이제 제법 가을 냄새가 나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좀처럼 하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옷장문을 열고 가을을 꺼낸다.

식초와 참기름이 섞인것 같은. 시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담배향와 섞여 말끔히 세탁된 자켓 위로 덕지덕지 눌어붙는다.
 
 대구의 앞산이란 곳 아랫자락에 살 때. 나는 자주 등산을 다녔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산이란 곳의 귀퉁도 밟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일상이었고, 가뿐했다.

거기의 실제 지명이 앞산이다.

작은 골짜기를 구석구석 품은 내 집 앞의 앞산.

엄마와 그 또래의 중년 여자들 사이에 끼어 얼음물에서 막 건진 오이를 뜯으며 뒷걸음로 그 산을 올랐다. 사뿐사뿐. 용감하게도.
 
 그리고 여기. 여기에서 나는 여전히 뒤집힌채로 시간을 걷고 있다.

내가 걸어온 시간만이 현실이라고 믿는다. 오로지 거기에서만 치열한 삶의 가치가 성립되리라.

앞날을 등진채. 앞날로 향한다.

미래나 꿈이나 그런 말들은 가증스러우며 연약한 자위라 여겨 죽어도 뒤돌아 앞을 보지 않는다.

꿈이란걸 꾸기에는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고, 삶의 목적을 찾기엔 종착지가 죽음이라 허무하기 짝이없다.

그것을 위해 산 적은 없지만 죽음은 끝일것 같은 저기 언덕 너머로 변함없이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등진 곳 어디쯤에서 엉겁결에 덮쳐오겠지. 오늘처럼.
 그것에도 냄새가 있다면 옷장을 열리라. 가을을 준비하러.
 
 그렇게 살고 있다. 오이를 뜯으며 앞산을 뒤로 오르던 철 없어 용감하던 어린아이로.

이제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편협한, 그리고 여전한 앞산 어느 자락의 철 없는 어린아이로.
 
 모순과 고통의 계절이다.
 
 

 

 

 

 

 


 
팽창하는
 
 
팽창하는 우주처럼 나의 세계는 그 끝을 모른채 맹렬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미지의 행성은 같은자리에서 정복되기만을 기다렸고 그 경계 안쪽에서 내가 사유하는 모든 현상과 사물들은 가장 함축적인 단어들로 실체를 가졌다.

나는 그들의 명백한 주인이었다.
 
 단어를 분절하여 자모를 나열하고 각각의 색과 냄새와 형태의 변형을 관찰하고 다시 그것들을 조합하여 다르게 배치하는 놀이를 계속했다.

그것은 의지에 따라 건축이기도 하고 회화이기도 하다.

나는 사물을 그렸고 풍경을 그렸고 내 마음을 그렸고 나의 연인을 그렸으며 때때로 상상이나 간밤의 꿈을 그렸다.

어떤 날은 하얗게 질려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나의 공터는 썩은 목재가 뒹구는 폐허로, 마천루를 쌓아 올린 도시로 변해갔다.

나는 시간의 질서를 지켰고 조화를 잃지 않았으며 때로는 위압적으로 그 미관을 뽐내기도 했다.
 


 내가 사는 것은 사건이기도 하고 현상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는 세계를 이룩했고 그 생은 집밖으로 들리는 희미한 경적같은 것이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데 굳이 가야할 곳도 없고 한 점 먼지에도 의미를 찾는데 다시 보니 그만이기도 하다.

세계는 포화를 이루고 들여다보면 공허함만 가득하다.

욕망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지만 방향을 잡았고 나는 더 노련해졌지만 동시에 뭉툭해져간다.

할 말이 많은데 하지 않아도 무관하다.


 
 아마도 나는 폐허에 더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무질서한, 부조화의, 아름답지 않은 폐허.

불필요한 단어가 불필요한 곳에 쳐박혀 불필요한 음율을 만드는 폐허.

잊혀진 사랑과 이름 모를 사람과 기억나지 않는 숫자와 잃어버린 양말 한쪽이 버려진 단어들과 함께 변질되어

곳곳에 숨어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밤을 기다리다 응큼한 두꺼비처럼 튀어나와 소음으로 나뒹구는 정복되지 않은 땅.

그것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이루어 졌다.
 나는 그 폐허 또한 내 세계의 안쪽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거기에서 나의 경계는 가장 팽팽하게 늘어진 상태로 확장을 멈춘다.

그렇다고 내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나와 내 세계의 팽창은 그 폐허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시간과 방향성을 가졌다.
 
 비명을 지르기 전에 생각했다.

나는 이 세계의 명백한 주인이고 가장 신실한 종이기도 하다.

세계가 수축한다.
 
 

 

 

 

 


 
슬픈음악


슬픈음악을 듣는다. 심심한 마음 무안해 할까
이것이 고독이라 불러본다. 
 
나는 단 한번도 우울했던 적이 없었다.
착하게 쌓인 시간들을 걷어내어 기억이라 들춰내고
쓸쓸한 가락을 구겨넣어 우울이라도 하려했다.
눈물이 차면 흐르기가 무섭게 바닥을 기며 그 고통을 심었다.
멈춤없이 시간이 쌓이고, 모든것은 기억으로만 자란다
이제껏 심심한 마음으로 뿌려댄 거름이 홍수를 이루니
기억으로 자라난 내 일생은 달아 죽을 열매를 맺어야겠다.
단 한순간도 그것을 위해 산 적 없으나
이제와 미련하게도 심심했던 마음 아쉬워
달아 죽을 열매를 맺어야겠다.
 
우울은 슬픔이 아니라 마지막의 절망이다.
오늘이 끝이라면, 나는 한 평생을 우울하였을 것이나
남은 날이 많기도하여 나는
단 한번도 우울했던 적이 없었다.
 
슬픈 음악을 듣는다. 눈물을 심는다.
 
심심한 내 마음이다.

 

 

 

 

 

 

 

우물에서 바라본 하늘
 


 
우물에서 바라 본 하늘은 개인의 사실이지
세상의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뒤늦게 mbc스페셜을 봤어요.
아주 두서없고 긴 글이 쓰고싶어집니다.
사건은 끝나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현상은 계속될 겁니다.
 
나의 세대에요. 우리와 당신들의 세대입니다.
인터넷과 범람하는 정보의 시대.
이 모든것들을 임의로 이용하고 받아들이며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필터가 온전한지 항상 경계하고
수시로 점검해야 할겁니다.
무지보다 무서운것이 편협한 지식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개인의 상처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외면할 자신이 있나요 여러분은?
그의 눈물은 모두가 반성하고 함께 치유해야할
시대의 상처일겁니다. 내게 오지랖이 남아있어 다행이군요.
 

 

 

 

 

 

 

 

반쪽만 남은 세상
 
 
다시 반쪽 눈으로 보게되고 하나의 다리로 걷게되리라
태생이 그러했으나 이것이 첫 번 인냥
휘청이다 꺾어지리라

 

나는 또 떠나게 될거야.
너는 이 길의 마지막을 향해 그래도 사랑한다.
할 수 있겠니

 

외로운 일이지.
사랑을 하는 것도, 사랑을 하지 않는 것도
우린 욕심이 너무 많거든.

 

너와 내가 감히 누구의 잣대로 하나가 되길 바란것 처럼

 

오로지 그것이 전부였던
너의 일생과 나의 일생이 부대껴
깎아내린 파편을 뒤로하고
어긋난 배신감에 치를 떨며
우리는 다시 반으로 갈라져 외롭게 되겠지
몰랐던 것도 아닌데. 아니었던 것도 아닌데,

 

얼마나 헤매야할까
반쪽만 남은 세상이 다시 전부가 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