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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남다른 감수성의, 할머니들이 처음 쓴 시!

by 로담한의원 2015. 10. 13.

남다른 감수성의, 할머니들이 처음 쓴 시!

 

 

 

우리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당신들의 자식 걱정에

매번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고,

가끔은 자식걱정에 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하시는 귀여우신 분입니다.

 

우리의 할머니들께서 쓰는법을 늦게 배우시고,

남부럽지 않게 솜씨를 뽐낸, 노인정의 백일장!

 

 

할머니들이 처음 쓴 시!

이상하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네요!

남다른 감수성의 할머니들의 시!

감상하시죠!

 

 

 

 

 

가족 나들이

박영순 (76세)

 

전북 정읍 선산

애들 아버지 있는 곳으로

아들 딸 오남매 가족과 나들이를 갔다.

비온 후 시원하고 상쾌한 날씨

6월의 푸르름과 밤꽃 향기까지

즐거워서 일까? 행복해서 일까?

어느새 나는 12살 소녀가 되었다.

남편 누운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허전해지는 마음

보고 싶어 불러봐도 무심하기만 하다.

그 때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한 마리

모자 위에 한참을 앉아 있다.

"아버님이 나비되어 오셨네요."

사위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뭐가 그리 급해 이 좋은 세상 버리고 가셨는가.

"난 못 배운 공부 많이 하고 갈래요."

돌아오는 길

변산반도 새만금 탁 트인 넓은 바다

푸른바다는 끝이 없다.

 

 

 

 

 

 

바느질

김춘심

 

영감의 엄지발가락이 나온 양말을 보며 바늘상자를 열어봅니다.

영감은 한사코 그걸 버려버리지 뭐하러 꿰매는가 하고

나를 나무라하지만 가족을 위한 영감의 수고를 생각하면

차마 양말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양말의 구멍난 곳을 바느질하며 문득 생각나는 것은

그 구멍이 있음으로 우리 가족이 이렇게 웃을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오늘 그렇게 감사하며 바느질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최말주

 

어머니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오남매 키우시느라

좋은 옷 한번 못 입으시고

좋은 음식도 못 잡수시고

멀고 먼 호아천길을 떠나셨다

좋은 옷 입어도 어머니 생각

좋은 음식 먹어도 어머니 생각

눈물이 앞을 가려 필을 놓았다

 

 

 

사랑

박순화

 

사랑을 모르고

살았다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사랑할 새도

없었다

 

 

 

 

 

칠십 할매의 인생

 이귀례 (73세)

 

젖달라 울어대는

막내 동생 둘러 업고

지쳐 버린 하루가 가고

숨겨 논 책 보따리를 둘러메고

밭이 아닌 학교로 향한 발걸음

초저녁 회초리에 닭똥같은 눈물만나네

퇴양 볕 쟁기질에

허기진 배 움켜잡고

덜커덕 덕 밤새워 베를 짜네

먼저간 병든 남편

자식 새끼 삼시 세끼 걱정에

뜬눈으로 지새던 밤들

세월이 약이라던가

칠십 넘어 찾아온 행복

오늘도 학교 가는 길

나는 열 살 소녀가 되었네

 

 

 

 

따뜻한 한글

임남순

 

어려서 몰래 공민학교에 갔다가

받아 온 입학원서에

친정어머니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호미를 들고 쫓아 와서 그만뒀다.

 

까막눈으로 결혼해 시부모님께 아홉 식구

시어머니 병수발 10년

시아버지 병수발 또 10년

 

이제야 99세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며

공부하러 다닌다

어려서 호미들고 말리던 어머니는

학교 늦겠다며 설거지는 내가 할테니

얼른 공부하러 학교 가라 하신다.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 싶었던 날들

돌아보면 외롭고 쓸쓸했던 나의 삶을

한글이 위로해 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배울 때마다

고생했다 장하다 따스하게 어루만져주었다

한글공부로 인해 달라진 나

움츠렸던 어깨도 펴주었다

 

누가 이 나이에 이런 가슴 벅친 행복을 가져다줄까!

참 따뜻한 한글이다.

 

 

 

 

 

내 친구는 소

강옥자

 

어린 시절

내 친구는 소

아침부터 저녁 까지

떨어지지 않는 다정한 친구

 

날마다 들에 나가

소먹이 풀들 베고

많이 울었다

 

소야 너는 좋겠다

말을 못하니

글을 몰라도 되니

차라리 나도 소가 되고 싶었다

 

60년 소처럼 살아온 난

이제

멍에를 벗고

어린 시절 소처럼

맘껏 배움의 들판에서

꿈을 뜯는다